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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리뷰] 유전

by CineTalk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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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전 (Hereditary, 2018)』 감상문 — 유전되는 비극과 자유의지의 붕괴에 대하여

유전 포스터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굴레, 그리고 자유의지의 환상에 대한 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악마숭배라는 오컬트적 장치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영화는 철저히 결정론적 세계관 위에 서 있다.

이야기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인물들은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조절할 수 없다’는 전조 속에서 움직인다. 애니는 “어머니가 나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고 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제당했던 삶을 고백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더 큰 의지’에 조정당하고 있을 뿐인가?

『유전』은 이 물음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영화 속의 가족은 한 명씩 파멸에 빠져든다. 이는 악마인 ‘파이몬’을 숭배하는 집단의 계획에 의한 것이지만, 영화는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쌓아간다. 딸 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딘가 불안정하고, 아들 피터는 자아와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으며, 애니는 조현병적 성향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란 후 그 불안을 자녀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이 모든 흐름은 한 가족 내에서 세대를 넘어 ‘무언가’가 전승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이 때의 ‘유전’은 단순한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영적 차원까지 확장된 메타포다. 트라우마는 기억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행동을 낳고, 반복을 만든다. 정신질환, 억눌린 감정, 말하지 못한 진실들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전가된다. 찰리의 죽음은 우발적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이 가족 안에서 예외적 사건이 아닌 ‘예정된 결말’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영화 내내 인물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해체한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상은 과거의 상처, 유전된 성향, 사회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 경로를 걷고 있을 뿐이다. 애니가 마지막에 마치 꼭두각시처럼 천장으로 올라가고, 피터가 무력하게 파이몬의 그릇이 되는 장면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철저히 부정적인 답을 던진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도구일 수 있다는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유전』이 주는 가장 근원적인 공포다.

또한 이 영화는 인간이 믿고 의지하던 관계들—가족, 부모, 자식—마저도 불안정하고 해체 가능한 구조로 그린다. 가족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은밀하고 폭력적으로 인간을 파괴하는 장소다. 애니는 자신도 모르게 딸에게 위협을 가하고, 아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며, 남편은 무력하게 모든 것을 방관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 사랑이 결코 서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가족마저도 허구적 이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암시한다.

『유전』의 엔딩은 어떤 면에서 냉소적이지만, 매우 철학적이다. 인물들은 결국 자신이 아닌 어떤 ‘질서’에 종속된다. 그 질서가 악마든, 유전이든, 사회 구조든, 그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공포를 넘어 실존적 절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조차 유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율성은 신화이고, 그 환상이 사라지는 순간—우리는 그 어떤 공포보다 근원적인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유전』은 그 두려움을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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